부석사 무량수전 앞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 때 짓고 고려 현종 때 고쳤으나, 1358년(공민왕 7)에 불에 타 버렸다.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발견된 묵서명에는 원융국사(圓融國師)[964~1053]가 1376년(우왕 2)에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연대상 서로 차이가 난다. 이는 당시 주지로 있었던 원응국사(圓應國師)를 오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아 대략 1376년 이전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전반의 광해군 연간에 새로 단청하였다. 또 기단의 동쪽 석면에 새겨진 명문에는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의 석공인 김애선(金愛先)이 기단석을 정리했다고 되어 있다. 19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상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善妙)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 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지대석·면석·갑석 등을 잘 다듬어 조성한 가구식(架構式)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화강석의 높은 기단 위에 남쪽을 향해 서 있는데, 정면 중앙의 3곳에 돌계단을 두었다. 평면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이며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정면에는 칸마다 살창을 달고, 측면은 벽으로 막았으며 뒷벽에는 가운데에 판문과 그 좌우로 붙박이 살창을 달았다. 공포는 기둥 위에 첨차와 살미[山彌]를 층층이 짜 올린 주심포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첨차 끝부분이 쌍‘S’자형의 곡선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가구 구조는 2고주 9량 형식이다. 툇보는 고주의 머리 부분에 결구 되어 헛첨차가 받치고 있으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가늘어진다. 툇보 머리는 소첨차와 십자로 짜이면서 짧은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도록 했다. 고주 위에는 공포를 짜서 충방(衝枋)을 결구하고 그 위에 초공(草工)을 놓은 후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는 충방과 초공을 놓고 종보[마룻보]를 걸었으며, 소슬합장이 종보 위에서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천장은 상부의 부재들을 모두 노출한 연등천장이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고, 불상 위에는 닫집[唐家]을 설치하여 장엄하다.